지워지지 않을 인터넷 공간을 찾아서
나의 오래된 습벽 중 하나는 인터넷에 영원히 남을, 지워지지 않을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아니 네이버 블로그에 써도 네이버가 망하지 않는 이상 지워질 일이 뭐가 있겠냐 하겠지만, 2023년에 갑자기 문을 닫아버린 이글루스를 생각하면 다시 만약에 대한 공포가 생겨나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러한 습벽이 아주 특이취향은 아닐 것 같다. 이 Bear Blog만 하더라도 절대 문 안 닫겠다고 선언한 Herman 아저씨를 믿고 쓰는 사람이 꽤 될거다. 다른 블로깅 플랫폼인 Posthaven에서도 비슷한 약속을 한다. 인터넷에 글을 남기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이글루스 꼴 안 당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은 있는게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이 인터넷에 영원히 남지 못하게 되었다면, 그 이유는 내가 쓰던 플랫폼이 망해서가 아니고 내가 글을 지워버려서일 것이다. 플랫폼 운영자가 글을 안 지우고 잘 보존해줘도 내가 직접 지워버리면 소용이 없다. 쓰자마자 지우고 쓰고 몇 달 지나서 지우고 블로그 자체를 지우고 그동안 참 많이도 지웠다.
이러다 보니 그냥 운영자가 문 안 닫을 거라고 약속한 수준 말고, 그냥 시스템 자체가 닫을 수가 없고 내가 지울 수도 없는 그런 공간이 없을까 탐색을 해 보았다. 개인정보 보호, 잊혀질 권리 이런 거 다 쌩까고 영원히 기록이 남아 있으려면, 지금 시점의 답은 블록체인인 것 같다. 운영자가 존재하는 이상 앞서 언급된 문제들을 그냥 무시하면서 운영할 수가 없는 것이다. 블록체인 거래 기록에 내 글을 남긴다면, 거기에 날짜도 박혀있고, 내용을 수정할 수도 없다. 물론 지금 코인을 채굴해서 체인을 유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점을 생각하면, 몇 십년 후에도 블록체인이 정상적으로 돌아갈까 하는 걱정은 든다.
그런데 그냥 플랫폼이 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준을 넘어서 글을 스스로도 지울 수 없는 공간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은지, 블록체인 거래 기록에 글을 남길 수 있는 플랫폼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비트코인캐시 체인에 남길 수 있는 memo.cash라는 곳이 있었고(영문 기준 217자까지만 쓸 수 있음), Arweave 체인(우리나라 거래소에는 상장도 안 된 듯 하다) 위에 파일을 업로드할 수 있는 ArDrive에 파일을 올려서 기록을 남기는 것이 가능했다(이 포스트를 업로드한 거래내역).
이렇게까지 지워지지 않을 곳을 찾아서 간절하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아니다. 그냥 이 블로그를 내가 지우지 않고 잘 쓰기만 해도 글은 남아 있을 것이다(Herman이 약속을 지킨다면). 결국 계속 글을 지우고 싶어 하는 나의 불안정한 마음을 믿지 못해서 생긴 습벽인 것 같다. 소설가 김영하가 알쓸신잡에서 벽에 커플낙서 새기는 심리에 대해서
사랑도 불안정하고 자아도 불안정하잖아요. 불안정하니까 안정돼 보이는 곳에 새기는 거죠. 안정되면 그걸 왜 새기겠어요. 바위처럼 사랑이 단단하면.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는데, 나도 결국 불안정하니까 영원한 웹 공간을 찾아다니는 것 아닐까.